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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5/07/03 01:01:38수정됨
Name   소요
Subject   여성들이 말하는 한녀란 무엇일까?
어... 음... 제목부터 폭탄을 던졌네요. 

들어가며

탐라를 보다보니 한 번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해서 발제를 해봤습니다. 여성 분들(젠더 측면이든 성별 측면이든)의 이야기를 듣기보다는, 남성 동무들끼리 모여서 이걸까? 저걸까? 추측하다가 우리끼리 무리수 던질 것 같기는 한데, 여성 분들께서 이런 질문에 직접적으로 답변하기에는 그만큼 또 [눈치보이고/신경쓰이는] 것이 있을 수 있을테니 참 어렵네요. 

그래서 아래 질문 다음에는 '한남'이라는 단어에 대한 제 생각들을 먼저 적어보겠읍니다. 
이후에는 온라인 상에서 질문에 답변을 잘 받는 법인, 대충 추측해서 '아 그거 아닌데'라고 반박하고 싶은 마음을 끌어내는 전략을 써보겠습니다.

질문

1. 여성들이 다른 여성을 지칭할 때 쓰는 '한녀'란 무엇일까요?
2. 왜 여성들이 다른 여성들에게 '한녀'라는 표현을 쓰는 걸까요?
3. 그 표현이 지칭하는 모습들 그리고 그 표현을 쓰는 우리들의 모습들을 바탕으로, 우리의 마음과 행위를 조형하는 배경을 추상화하여 생각하면 무엇이 있을까요?

배경

https://trends.google.co.kr/trends/explore?date=all&geo=KR&q=%ED%95%9C%EB%85%80,%ED%95%9C%EB%82%A8&hl=ko

구글 트렌드 분석은 한남/한녀라는 단어에 대한 '차트에서 가장 높은 지점 대비 검색 관심도'를 보여줘요. 물론 한남이라는 단어에는, 이제 온라인에서 빈번하게 쓰이는 자국남성혐오를 넘어 서울의 지명 및 대학 명칭도 섞여있으니 약간은 과대 추정되었을 수 있겠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남이라는 단어는 꽤나 보편화 되었다고 추정해도 되겠지요? 각자 이런 용어를 온라인(혹은 오프라인)에서 맥락에 따라 편하게 쓰는 정도는 사람마다 당연히 다르겠지만, 이 단어를 둘러싸고 있는 사회적 의미망에 대해서는 이제 많은 한국사람들이 감을 잡고 있다고 생각해도 될 듯해요. 바로 위에 제가 폭탄을 던졌다 ㅠㅠ 면서 밑밥 깔았듯이요.

위 데이터에서 보이듯이 한남/한녀라는 두 단어가, 우리가 공격적 대상화를 위해 통용되는 빈도에는 차이가 있다는 것도 볼 수 있어요. '한녀'라는 단어가, '한남'이라는 호명 이후에 그 반작용으로 나왔다는 분석이 있으니 시차에 따른 보편화의 정도 차이를 생각해 볼 수 있고, 언론에서 어디에 더 집중해서 논의했는가도 얘기해 볼 수 있겠지요. 하지만 우선 여기서는 이걸 넘어서 '한녀'라는 단어 또한 상당히 많은 사람 한국 사람들의 (적어도 온라인에서의) 언어 활용에 들어와 있으리라는 전제를 깔아보도록 해요.

제가 궁금한 것은, 남성이 한남이라는 용어를 쓰는 경우, 여성이 한녀라는 용어를 쓰는 심리에 대한 것이에요.  특히 그 중에서도 상대 집단의 논리에 좀 심하게 동조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남아있는 그 잔여가 무엇일까 하는 질문입니다. 

'한남'에 대한 생각

질문을 던지기 전에, 저는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 먼저 정리하는 것이 예의겠지요.

제 경우에는 꽤나 맥락 특수적으로 써요. 여사친이 '새로운 신임 남자 교수가 한국인인데, 이상하게 30대 치고 위계적이고, 자꾸 이유없이 연락을 하고 신상을 캐묻는다.'면서 짜증을 토로하면, [한남이 미안해 유유]하면서 너스레를 떠는 정도로? 아니면 젠더 이슈를 바탕으로 토론을 할 때 성토의 장으로 간다 싶으면, [내 안의 작은 한남이가 그 정도까지 발언을 면전에서 듣는 건 속상하다고 외친다]면서 분위기를 환기하는 정도로 ㅇㅇ; 아내와 대화할 때도 가끔씩 불법촬영물 유표 급으로 심하다 싶은 얘기를 들으면 [에휴 한남쉑들] 정도로 진심에서 우러나는 공감을 표현하거나요.

여기에는 세 가지 정도 마음이 섞여있는 것 같아요. 

먼저, '한남'이라는 단어에 모호하게 묶여있는 (한국)남성에 대한 부정적인 표상들이, 생물학적 남성이자(그래서 호르몬의 영향을 받을 거고), 한국 사회라는 문화적 자장에서 사회화 된('남자'는 이래야 한다는 사회적 각본을 어느 정도는 의식할 수 밖에 없는) 저에게서도 존재한다(혹은 했었다)는 인정이지요. 과잉되고 극화된 여초 사이트들의 '한남론'에 당연히 제가 100% 들어맞지는 않지만, 나도 그런 모습을 지닐 때가 있었고, 지금도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굳이 바꾸지 않은 채 유지하고 있는 지점이 있다? 정도의 마음이여요. 예전에 아는 분께서 [완전 홍상수 영화 주인공 같았다]고 그래서 그 정도로 찌질했구나 싶어서 웃기면서도, 씁쓸하고, 반성하면서도, 그 순간이면 또 그럤을 것 같다고 생각했던 기억이 나네요 ㅋㅋㅋ 무튼 제 정체성이 단순히 한국 + 남자라는 두 단어로 설명이 되지는 않겠다만, 그 두 가지 요소가 저에게 미치고 있는 긍정적이든/부정적이든 복잡한 면모는 당연히 있지 않겠나 싶은 마음입니당. 저는 문화적 도구상자라는 표현을 더 선호하지만, 사람들은 소위 '구조'라고 얘기하는 그 영향이요. 그만큼 우리의 생각과 행동을 조형하는 힘이 세다는 거지요. 

두 번째는, 이러한 집단 수준에서의 관찰, 그리고 젠더이분적인 관점에서 포착된 '남/녀의 차이'는 꽤나 과장되어 있고, 이런 집단 수준에서의 관측 결과를 개인에게 적용하는 건 조심해야 한다는 것이에요. 다만 여기에 더해 '행복한 가정은 모두 모습이 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제각각의 불행을 안고 있다'는 안나 카레리나의 서문을 미묘하게 비튼 생각도 있어요. 대부분의 한국사람들은 젠더와는 크게 관련없이 공유하는 규범과 실천이 많을 텐데, 사회화의 어떤 지점에서 사람들 중 일부가 서로를 대상화 하는 '한남/한녀'의 어떤 극단적인 형태로 쭉 미끄러지는 경우가 있는 것 같다?는 러프한 생각입니다. 아직 이 쪽은 생각이 뚜렷하게 정리되지는 않았요. 다만 우리가 정규분포의 보다 바깥 쪽에서 나타나는 모습으로 시선이 쏠리지만, 정규분포 안 쪽의 모습들을 분명 염두에 두어야 한다는 생각이에요. 이제 그러니까 [한남들은 예비범죄자고, 사과해야 하고, 반성해야 하고] 여기까지 나가면 '허허 선생님 그거는 동의하지 않습니다'가 되는 거고, [한녀들은 이기적이고 겉과 속이 다르고 나빼썅이라고만 생각하고] 여기까지 가면 '흠... 그 정돈가?'가 되는 거지요. 그러니 지나친 구분짓기를 경계하자는 마음이에요. 여기에 한 걸음 더 나아가면 지나친 구분짓기에 대한 경계조차도 경계해야 한다는 ㅋㅋㅋㅋㅋㅋㅋ 무친 계층구조가 출몰하지만, 거기까지 정신잡고 있기에는 제가 인지능력이 약해서 가끔 정신줄 놓기도 하네요. 

세 번째는, 이건 보다 일상적인 언어 게임의 일종으로 '한남/한녀'라는 표현이 의사소통이나 공감의 도구로 활용될 수 있는 여지는 활용할 기회가 오면 활용해도 괜찮지 않나? 싶은 생각이 있어요. 무튼 '한남'이라는 단어는 여기에 담긴 - 이제는 가부장제 비판에서 벗어나 어떤 위생주의적 차원 혹은 페미니즘 공중제비 한바퀴 돌고 전통적인 남성상에 대한 체리피킹까지 나아간 - 모호함 때문에 언어 게임을 벌이기는 꽤나 재미있는 도구거든요. 물론 온라인 게시판에서 쓰기에는 비언어적 도구들이 제한되니까, 요렇게 티타임 글로 독립적인 맥락을 상세하게 만들지 않으면 정지각이 날카롭게 보여 자제할 수 밖에 없지만요. 

도덕 게임에 대한 네 번째 생각도 있는데, 이미 글이 너무 뚱뚱해졌으니; 이 정도면 밑밥은 충분히 깐 것 같아서,,,

'한녀'는 왜?

무튼 제가 생물학적 여성도 아니고, 한국 사회에서 여성으로 사회화 된 것도 아니니까, 여성들이 [한녀]를 얘기할 때 무엇을 지칭하는지는 손에 잘 잡히지가 않아요. [한남]은 이제는 모호함이 엄청 커졌지만, 초기에는 가부장제 비판과 연결된 어떤 중심축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근데 가끔씩 여성 분들이 [한녀]를 비판하거나 조롱할 때 쓰는 용어들은 뭔가 중심축이 있나? 싶나 헷갈려요. 위 구글 트렌드 검색에서도 보여주듯이, [한녀]라는 단어는 [한남]에 비해 온라인 공간상에서의 발화 빈도가 상대적으로 적고, 제가 여초 사이트를 계속 모니터링해서 화용적 예를 수집하는 것이 아닌지라, 가끔 출몰하는 용례들을 비교하는 것 외에는 접근이 힘들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호하게 드는 느낌은, 거대하고 외부적인 구조를 향하기 보다는 개인과 개인이 서로의 태도와 행동양식에 대해 던지는 대상화가 섞여들어오는 것 같아요. 한 편으로는 '한남'에 대한 소비를 비판하면서도 (이에 대한 재미있는 서적으로는, 안희제(2023). '망설이는 사랑: 케이팝 아이돌 논란과 매혹의 공론장'), 한 편으로는 내적 모순과 위선, 과도한 자기중심성과 피해자 의식 등을 극화해서 비판하는 쪽에 방점이 맞추어져 있는 것 같기도 하고요. 

근데 이 또한 굳이 '여성'에게 더 두드러지는 특성인가?를 고민해보면, 피해자 의식은 이제 남성들에게도 두드러지고, 4년 전 연구에서도 동유럽 청년들의 담론과 한국 청년들의 담론 차이로 부각되었던 (여성정책연구원(2021). '청년세대 ‘젠더갈등’ 대응을 위한 성평등 정책의 과제') 얘기여요. 온라인 페미니즘이 동원한 정체성 정치, 피해자 서사를 적극적으로 내면화하여 동원한다는 그것이요 ㅇㅇ;

내적 모순과 위선. 그건 우리 인간들이 나약해서 어쩔 수 없는 것 아닌가 싶거든요. 아 그나마 한국 여성 분들이 사회적 바람직성 편향 압력을 강하게 받는다는 점에서 보면, 실제 행위에서 한국 남성들과 큰 차이가 있다기 보다는 '타자에게 말로 현시하는 자기'와 실제 행위로 타자에게 인식되는 그들 사이의 간극이 더 크게 느껴질 수 있다고는 할 수 있겠네요. 그럼 내적 모순과 위선의 원천조차도 사회적 바람직성 편향 압력이고, 그걸 비판하는 마음조차도 사회적 바람직성 편향 압력의 영향이라는 순환관계가 형성될 수도 있겠고요. 그럼 그 사회적 바람직성 편향 압력이 가부장제에서 만들어진 것이다!로 공중제비 돌면 내부 연대는 공고해 질 수 있을 것 같지만, 그렇게 또 두들겨 팰 누군가를 찾아내는 것이 바람직한지는 모르겠어요. 사회적 바람직성 편향 압력은 대 SNS 시대가 열어젖힌 열린/감시사회 및 탐라에서 몇몇 분들이 펑글로 잘 짚어주셨던 한국의 높은 사회압과 연결해서 보는 것이 더 낫지 않나 싶기도 하고요.

나가며

동성이 동성에게 가하는 혐오가 가장 잔인하다는, 우리가 막연하게 인식하는 전제를 넘어서, 그래도 무언가 더 상세한 논의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가지고 글을 써봤읍니다. 너무 폭탄이라 댓망진창나서 잠긴다면 그건 이제 뭐가 되도 제 책임이 되겠어요. 댓글은 바로바로 달지 못하지만, 최대한 논의를 잘 이끌어보고자 노력하겠읍니다. 꼭 위에 제시된 질문 말고, 다른 생각을 적어주셔도 좋읍니다. 너무 날선 접근은 자제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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