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양한 주제에 대해 자유롭게 글을 작성하는 게시판입니다.
Date 16/01/18 01:04:06
Name   눈부심
Subject   눈 뜬 봉사
다른 게시판에서 어떤 시를 읽었어요. 스크롤 내리기 전에 어떤 뜻일까 먼저 생각해 보세요.


*  *  *
악마의 눈물이라는 더치 커피..........천수호



2초에 한 방울씩 떨어지는 커피가 있다
세 번 실망하고, 단 한 번에 만사(萬事)가 되는 무덤이 있다
떨어질 동안 다섯 번 멈추는 공중이 있다
그것을 뜸들인다고 말하다가
밥을 먹지 못한 저녁이 있다
귀와 귀가 잘 엮여서
세상에서 가장 오래 듣는 말을 만든다
똑., 똑,
검지의 두번째 마디와 세번째 마디 사이
침묵 보다 끊기 어려운 당신의 눈물

*  *  *



시집 제목은 <우울은 허밍>(문학동네 시인선). 이 시를 올리신 분에 의하면 시를 쓰신 분은 50대 초반의 여성이라고 합니다. 시를 올리시면서 혹시나 시집을 구매하고 싶어하는 분들이 계실까봐 시집 제목과 출판사를 명기해 두셨더라고요. 인쇄로 태어나도 독자들의 주목을 받지 못하고 세상 구석에 꽁꽁 숨어버린 작품이 잘 팔리기를 고대하시는 글쓰신 분의 마음이 따뜻했습니다. 그건 그렇고 이 시가 어떤 내용일 것 같아요? 전 읽자마자 '아! 모르겠다!'란 느낌이었어요.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데 사람을 사로잡는 것 같아요. 일단 저마다 해석이 다를 수 있고 그 다름이 정당하기도 한데요. 의미는 알 수 없으나 시란 게 이래서 매력적이구나 싶더라고요. 단어들을 가지고 마음껏 그림을 그린 것 같아요.

재밌는 게, 제게는 잔뜩 추상화인데 다른 독자에게는 아주 쉽고 명백한 명물화더란 거죠. 이걸 아주머니들 커뮤니티에 퍼 갔거든요. 어떤 주부님께서 이런 댓글을 달아주셨어요.
[천천히 내려 마시는 더치 커피에 중독되어 손가락 두 마디 반 되는 그 작게 내려오는 커피 한 잔 마시려고 눈물나게 기다리는 한 사람의 기다림을 멋드러지게 써 본 시잖아요.]

어쩜! 저 방금까지 앞 못보다가 번쩍 눈 띄인 사람같이 시가 선명하게 보이는 거예요! 더 심오한 해석도 있을 수 있겠지만 어떤 해석이든 누구에게는 저렇게 명쾌할 수 있다는 게 너무너무 재밌어요.



0


    목록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2068 도서/문학이철희 소장의 민주당 입당의 변 9 Beer Inside 16/01/20 5230 1
    2045 도서/문학눈 뜬 봉사 4 눈부심 16/01/18 5283 0
    1951 도서/문학오이디푸스와 페르스발 14 Moira 16/01/06 9386 4
    1907 도서/문학[정보] 『하늘과 바람과 별과 詩』영인본이 예판 중입니다. 9 April_fool 15/12/31 7516 0
    1868 도서/문학다들 리디하세요 리디 26 기아트윈스 15/12/26 8607 1
    1864 도서/문학비극적 영웅의 조건 7 팟저 15/12/25 9254 5
    1856 도서/문학유럽의 교육 - 로맹 가리 27 마르코폴로 15/12/23 7891 1
    1845 도서/문학루살카에 대한 기억, 하일지의 진술을 읽고 30 김나무 15/12/22 7778 5
    1785 도서/문학<암흑의 핵심>이 식민주의의 한계를 넘어서지 않은 이유 9 팟저 15/12/16 9543 2
    1768 도서/문학<진술> - 하일지 40 마르코폴로 15/12/14 9918 2
    1766 도서/문학새로 지정된 표준어들 (이쁘다, 찰지다 등...) 17 西木野真姫 15/12/14 7052 3
    1752 도서/문학당신은 누구 입니까? 30 Beer Inside 15/12/11 7145 4
    1701 도서/문학인문학, 그리고 라캉 다시 읽기 85 뤼야 15/12/04 11020 8
    1696 도서/문학발자크와 바느질하는 중국소녀 12 마르코폴로 15/12/03 7356 6
    1638 도서/문학라캉과 들뢰즈를 읽어야 할까? 66 뤼야 15/11/26 11486 2
    1535 도서/문학자승자박 : 동녘 출판사가 사과문을 게재했습니다. 38 구밀복검 15/11/12 8073 0
    1503 도서/문학D.H 로렌스로 읽어보는 실존의 여성과 나 29 뤼야 15/11/09 12684 1
    1415 도서/문학[2015년 노벨문학상]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 여성은 전쟁을 이렇게 기억합니다. 14 다람쥐 15/11/01 11167 9
    1406 도서/문학모옌 [열세걸음]으로 생각해보는 세계문학 35 뤼야 15/11/01 11683 3
    1380 도서/문학[조각글] 홍차넷 발 문학 소모임입니다. 15 얼그레이 15/10/30 9861 0
    1369 도서/문학김영하 산문집 [말하다] 중에서 27 삼공파일 15/10/29 12774 6
    1335 도서/문학내포저자 - 간절히, 아주 간절히 이야기하기 18 뤼야 15/10/25 12671 1
    1333 도서/문학[모집] 조각글 모임(문학 합평) 인원 모집합니다! 32 얼그레이 15/10/24 10379 0
    1244 도서/문학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 2 damianhwang 15/10/13 9051 0
    845 도서/문학"걸리버 여행기"를 부탁해... 9 Neandertal 15/08/26 6434 0
    목록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4시간내에 달린 댓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