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양한 주제에 대해 자유롭게 글을 작성하는 게시판입니다.
Date 25/10/19 21:40:11
Name   meson
Subject   역사 커뮤니티들의 침체(?)에 대한 잡설
역사의 흐름을 자동차 주행에 비유한다면, 사회는 엔진이고 제도는 핸들이며 인물은 엑셀러레이터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근데 이제 달리다 보면 어느 경로를 취하느냐에 따라 밤색버섯과 부딪쳐서 엔진이 식어버리기도 하고, 빨간버섯이랑 부딪쳐서 엔진이 업그레이드되기도 하고, 뭐 그런 거죠.

*

이런 요상한 이야기를 왜 하느냐 하면, 흔히 이야기하는 소재로서의 역사뿐 아니라 역사를 다루는 커뮤니티의 흐름을 생각해볼 때도 이런 렌즈가 효용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기 때문입니다. 당연히 해외 역사 커뮤니티에 대해서는 하나도 모릅니다만, 국내 역사 커뮤니티라고 한다면, 일부 주워들은 바가 있는데요.

아마 여기에도 저보다 더 잘 아시는 분이 계실 것 같지만, 아는 선에서만 말해보자면 현재 한국에는 역사를 주제로 하는 인터넷 커뮤니티가 몇몇 존재합니다. 우선 펨코의 미스터리/공포 게시판(미갤)이 가장 크고, DC의 패독갤·토탈워갤·군갤·대역갤 등은 잘 활성화되어 있으나 역사가 메인 주제인 커뮤니티가 아니므로 논외로 봅니다. 그럼 DC에서는 위진갤과 세계사갤 정도가 남고, 추가로 아카라이브의 역사지리 채널도 역사 커뮤니티로 볼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네이버에 부흥카페가 아직 살아있고, 다음은 잘 모릅니다. 하여간 여기까지를 다시 정리하면 펨코 미갤, 부흥카페, 위진갤, 역사지리채널, 세계사갤이 되는데 활성화 정도도 대략 이 순서일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여기서 뭐가 문제인가 하면, 저 5개 중에 사람이 많다고 스스로 자부하는 커뮤니티가 하나도 없으며, 부흥에 가면 부흥이 침체기라고 하고 미갤에 가면 미갤유입이 너무 적다고 합니다. 미갤은 포텐컷이 27이고 포텐에 가면 기본 조회수가 수만이 나오므로 어떻게 유입이 적을 수가 있을까 싶지만, 펨코 공지의 통계를 보면 실제로 미갤의 게시판 조회수 순위가 2018(4,3,8) - 2019(3,6,6) - 2020(8,8,7) - 2021(8,13,21) - 2022(21,19,18) - 2023(18,24) - 2024(25,20,23) - 2025(25) 등으로, 2021년을 기점으로 하락하였습니다. 물론 이게 꼭 미갤의 침체라기보다는 펨코의 다른 게시판들이 성장하여 순위가 바뀐 것일 수도 있지만, 하여간 미갤 사람들은 순위가 낮아졌다는 사실에 침체 분위기를 일부 느끼고 있다는 것이죠.

그런데 이런 미갤조차도 다른 역사 커뮤니티와 비교하면 대형 커뮤니티이며, 리젠율을 비교했을 때 미갤과 나머지 4개 커뮤니티 사이에는 벽이 하나 존재합니다. 통계자료가 있느냐 하면 없지만 부흥카페는 체감상 하루 평균 10~12개 정도의 글이 올라오는데, 미갤은 그 5~6배의 글이 올라오므로 대략 차이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미갤은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역사글 외에 미스터리, 자연생물, 우주과학, 지식경제, 질문요청 등 다양한 정보성 주제를 다 합쳐놓았기 때문에 역사글 자체로만 따지면 실질 리젠율은 절반 이상 줄어들기는 하겠지만, 다른 역사 커뮤니티라고 역사글만 올라오는 것은 아니며 상주인구의 규모 자체는 조회수 전체에 적용되므로 벽이 존재하는 것은 대체로 사실입니다.

이러한 서론을 길게 늘어놓은 까닭은 이런 상황이 되어가는 이유를 생각해보기 위해서인데요. 유입 측면에서 따지자면 기본적으로 해당 커뮤니티의 존재가 어떤 식으로든 많이 알려지는 것이 중요하므로, 지속적으로 포텐에 노출되어 그 존재가 환기되는 미갤을 제외한 나머지 4개 커뮤니티는 사실 유입의 창구가 마땅치 않다는 점을 고려할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물론 나무위키에는 어디어디가 역사 커뮤니티인지 다 나와 있고, 위진갤·역사지리채널·세계사갤은 그렇다 치더라도 부흥카페는 회원이 팔만사천인데 꼭 새로 유입이 없어서 침체되었다고 볼 수 있는지는 반론의 여지가 있기는 합니다.

혹은 정체성 측면에서 이야기하자면, 미갤은 대중적인 역사소개나 일화글이 올라오기에 더없이 좋은 환경이고 그 수고에 비해 보상이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위진갤의 경우 삼국지를 기반으로 하여 역사 전반을 다루는 곳이고, ‘촉까’ 성향의 삼국지 동호인들이 결집한 곳이 사실상 여기밖에 없기 때문에 기본적인 수요 자체는 일정하게 존재한다고 여겨집니다. 역사지리채널과 세계사갤은 사실 제가 잘 모르는데, DC에서 파생되었으므로 부담없이 글을 쓸 수 있는 문화가 있을 것으로 생각되지만, 따지고 보면 펨코 미갤도 문화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으므로 미갤의 파이를 가져오기가 힘든 것은 아닐까 생각됩니다.

그럼 남는 것은 부흥카페인데, 나무위키를 보면 2010년대에도 이미 이 카페가 스노비즘이 심하고 글쓰기 버튼이 무겁다는 이야기가 적혀 있습니다. 실제로는 별로 안 그럴지도 모르지만, 하여간 왠지 글쓰기가 무섭다는 느낌이 들면 가벼운 글은 잘 올라오지 않을 것이고, 어려운 역사글의 비율이 높아지게 되므로 조회수든 리젠율이든 저조해졌겠죠. 물론 어려운 글만 올라오더라도 그 정도로 깊이 활동을 하는 동호인들 사이에서는 댓글과 피드백이 활발하게 달렸더라면, 대중성은 잃더라도 세미-프로 역사동호인들의 요람이 될 수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부흥카페의 올드비들은 나이를 먹음에 따라 점차 활동이 뜸해지고, 뜸해지지 않더라도 서로 토론을 하다 싸우거나, 운영권을 놓고 파벌 싸움이 나거나 하여 떠나갔기 때문에 실제로는 세미-프로들 중심 카페로 전환되지도 못했고, 그냥 애매한 상태로 현재에 이르고 있는 듯합니다.

여기까지가 국내 역사 커뮤니티들의 변천을 불러온 ‘엔진’에 대한 하나의 뇌피셜이었고요. 따라서 논하고자 하는 바는, 이러한 관점을 참고했을 때, 핸들을 어디로 돌려야 이 역사 커뮤니티들이 (밤색버섯이 아니라) 빨간버섯이 있는 쪽으로 주행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입니다. 앞에서 장황하게 늘어놓은 바를 줄이자면 펨코 미갤은 그나마 살만하고 나머지 4개 커뮤니티는 그렇지 않으며, 미갤은 유입창구가 있지만 나머지 4개 커뮤니티는 그렇지 않으며, 부흥카페는 (유령)회원은 많아도 세미-프로가 부족하여 어정쩡해졌다는 주장이 되는데요. 설정을 이렇게 해 놓고 생각하자면 미갤은 이 이상 대중적일 수가 없고, 위진갤은 핵심 콘텐츠가 있기 때문에 침체가 침체가 아닐 수 있으나, 나머지 3개 커뮤니티는 거의 교착상태라는 말이 됩니다.

그런데 이 셋 중에 역사지리채널과 세계사갤은 미갤과 문화가 유사한데 포텐 시스템의 수혜만 못 받는 것이기 때문에, 현재로서는 미갤이 상위호환으로 기능하고 있음을 부정하기 어렵습니다. 역할을 떠올려 본다면 일종의 방공호로서, 가령 미갤에 어떠한 사태가 발생하여 사람들이 다른 곳으로 유입된다면 그 목적지로 역사지리채널이나 세계사갤이 각광받을 수 있겠지만, 그게 오늘은 아닌 것 같고 말이지요. 다시 말해 비유하자면 핸들은 잘 고정되었고 엔진도 정품이지만, 엑셀러레이터를 밟을 사람이 없는 격이죠. 반면 이러한 기준으로 보면 부흥카페는 다소 다른데, 네이버 카페이기 때문에 심리적 진입장벽이 있고 문화도 DC 계열 커뮤니티와는 차이가 있어서 미갤의 대체재가 되기에 적합하다고 느껴지지는 않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조건에도 불구하고 부흥카페가 어정쩡함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결국 미갤과는 다른 방향에서 특색을 확보해야 할 것입니다. 어차피 대중적인 역사 커뮤니티로는 미갤을 따라갈 수가 없고, 설령 미갤이 없더라도 부흥카페가 대체제가 되기에는 부적합할 것이기 때문이죠. 그럼 어떤 방법이 있느냐 하면, 위에서 언급했듯이 세미-프로들의 커뮤니티가 되는 길이 하나 있기는 합니다. 다만 문제는 기성 동호인들은 여러 가지 이유로 부흥카페 활동이 뜸해졌으니, 새로운 세미-프로 역사동호인을 수혈해야 한다는 점인데요. 어디선가 그런 인재를 찾아서 초빙하는 것은 예전에 떠나간 세미-프로들을 다시 불러오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기 마련이긴 합니다. 비유하자면 핸들은 돌아가더라도 엔진이 거의 식어버려서, 엑셀러레이터를 어지간히 세게 밟지 않는 이상 빨간버섯까지 갈 수 있을지 어떨지 모르겠는 상황인 것이죠. 물론 못 간다고 해도 그게 꼭 특별히 큰일이라고 규정할 수도 없기는 하지만 말입니다.

*

꼭 이런 생각이 맞는다고야 할 수 없겠지만, 문득 잡상이 생겨서 이처럼 한담을 하나 해 보았는데요. 한담이기는 하지만 어째서인지 긴 글을 쓰고 말았으므로 이상한 내용도 다소 있을 수 있는데, 혹 이에 대해 잘 아시는 분이 있다면 가차없이 피드백을 해 주시면 매우 좋을 것 같습니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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