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양한 주제에 대해 자유롭게 글을 작성하는 게시판입니다.
Date 15/09/06 19:24:37
Name   Raute
Subject   아버지가 딸에게 보내는 편지


이걸 역사로 넣어야 하나 스포츠로 넣어야 하나 애매한데 일단은 스포츠 카테고리로 묶을 수는 있는 얘기라 스포츠로 넣습니다.


1976년 아르헨티나에 쿠데타가 일어나 이사벨 페론이 쫓겨나고 호르헤 비델라 장군이 정부수반으로 등극합니다. 군부가 집권해 철권통치를 하는 것도 고까운데 노골적으로 월드컵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낌새가 보이자 이를 거부해야 한다는 여론이 조성됩니다. 특히 네덜란드에서 첨예한 논란이 있었고, 네덜란드의 상징이던 요한 크루이프가 불참을 선언한 것으로 유명합니다(다만 수십 년 뒤에 사실 정치적 이유로 불참한 게 아니라 대회 전에 가족과 함께 납치당했었는데 충격받은 가족들을 두고 혼자 타국으로 떠날 수 없었다고 밝혔습니다).

아르헨티나에는 '엘 그라피코'라는 이름의 유명한 언론이 있습니다. 몇 년 뒤면 창간 100주년을 맞이하는, 아르헨티나에서 가장 오래되고 많이 팔리는 스포츠 월간지죠. 별명이 '스포츠의 바이블'일 정도로 방대한 저작을 남겼고요. 그 엘 그라피코에서 월드컵 직전인 1978년 6월에 뤼트 크롤이 딸에게 보내는 편지를 공개합니다. 본문의 사진이 그 편지인데 내용인즉 여기는 평화로운 분위기고, 군인들은 총구에 꽃을 꽂고 있다, 그러니 딸아 걱정하지 마라... 라는 거죠. 세계적인 선수이자 크루이프를 대신한 네덜란드의 새 주장이 이런 글을 쓰니 논란이 되는데, 정작 당사자인 크롤이 자기는 이런 편지를 쓴 적이 없다고 부정해버립니다. 당연히 뻔한 수작이었죠.

이 대회에서 아르헨티나는 우승하기 위해 자기들에게 유리하게 일정과 대진을 짰고, 이런저런 편파판정과 홈어드밴티지를 최대한 입었으며, 결승에 진출하기 위해 페루 정부를 상대로 매수했다는 썰까지 있습니다(근데 농담이나 음모론이 아니고 진지하게 거론된다는 게 함정). 결국 아르헨티나는 결승전에 올랐고, 첫 월드컵 우승을 차지합니다. 위 편지의 주인공 크롤은 뛰어난 활약을 보이지만 결국 결승전에서 연장 혈투 끝에 아르헨티나에게 패하고 고배를 마셨죠.

이러니 저러니 해도 우승할 만한 실력이 있었다고 당시의 아르헨티나 팀 자체는 높이 보는 시선도 있습니다만 이건 하드하게 파고드는 축덕들 사이에서나 통용되는 얘기고, 일반적으로는 '더러운 우승'으로 까이는 편입니다. 이래서 스포츠에 정치가 끼어들면 안 좋아요.



1


    목록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9861 음악아바나의 밤 9 바나나코우 19/10/19 4716 2
    10559 일상/생각아버지 4 호라타래 20/05/07 4845 18
    932 생활체육아버지가 딸에게 보내는 편지 3 Raute 15/09/06 6294 1
    15676 기타아버지가 전화를 받지 않는다. 21 망울망울 25/08/20 2140 11
    11223 일상/생각아버지께서 긴 여행을 가실 거 같습니다 10 bullfrog 20/12/14 5300 7
    1574 정치아버지께서 이런게 카톡에서 돈다고, 진짜냐고 물어보셨습니다. 19 darwin4078 15/11/17 8657 0
    2917 일상/생각아버지는 꿈꾸던 시베리아의 새하얀 벌판을 보지 못할 것이다. 4 원더월 16/05/30 4688 6
    6108 기타아버지를 묘지에 모셔두고 왔습니다. 23 어제내린비 17/08/15 5386 8
    13585 일상/생각아버지와의 관계 12 마아아대 23/02/21 3784 0
    1633 일상/생각아버지의 다리가 아픈 이유는 22 YORDLE ONE 15/11/25 10834 16
    12747 일상/생각아버지의 제자가 의사였습니다. 11 Regenbogen 22/04/21 5610 12
    4008 일상/생각아버지의 한마디 6 피아니시모 16/10/25 4122 2
    8263 정치아베 3선에 대한 일본 유명 신문들의 반응 1 Raute 18/09/22 5897 14
    14369 일상/생각아보카도 토스트 개발한 쉐프의 죽음 8 Soporatif 23/12/31 3359 19
    8580 일상/생각아부지와의 대화 - 주제는 재테크 5 벤쟈민 18/11/30 5234 3
    11147 정치아브라함 협정에 숨겨진 트럼프의 셈법 2 소원의항구 20/11/19 4872 1
    10013 일상/생각아빠 직업은 무역업.. 근데 제 직업은 아닌데요.. 38 집에가고파요 19/11/22 7275 6
    13639 육아/가정아빠. 동물원! 동물원에 가고 싶어요! 27 쉬군 23/03/14 4195 54
    15708 기타아빠가 만들어줄께 2탄입니다. 9 큐리스 25/09/05 1378 3
    15094 일상/생각아빠는 딸바보가 될수 밖에 없어요 ㅎㅎ 5 큐리스 24/12/06 1937 6
    7845 음악아빠는 아빠상어야 8 바나나코우 18/07/14 5348 4
    15851 육아/가정아빠랑 결혼만 안 했어도...! (남편: ???) 11 CO11313 25/11/16 1319 15
    8047 기타아빠랑 또 좀 말다툼이 있었습니다. 13 태정이 18/08/13 6092 2
    2427 일상/생각아빠와 알파고 6 nickyo 16/03/18 4966 5
    3161 요리/음식아빠요리 만들기 - 스테이크를 맛있게 굽기 위해 필요한 도구 21 졸려졸려 16/06/29 7406 4
    목록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4시간내에 달린 댓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