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양한 주제에 대해 자유롭게 글을 작성하는 게시판입니다.
Date 19/01/02 10:35:34
Name   Iowa
File #1   9B356A82_8A8A_439B_8DB8_C2851F194494.jpeg (1018.5 KB), Download : 16
Subject   대추와 위스키



네모난 락 아이스 이로 황금색의 위스키가 캐러멜 시럽처럼 녹아 내린다. 짙은 오크색 인테리어와 어울리는 버번을 한잔 주문하고, 습기에 절은 숨을 한 템포 돌렸다. 언젠가부터 맛을 들인 버번 위스키들은 하나같이 광활한 북아메리카의 치솟는 전나무들을 닮았다. 아마도 비슷한 재료와 공정을 거쳤을 일본의 히비키나 야마자키의 정갈한 여관 주인의 접대와도 같은 인상과 사뭇 반대되는, 대륙의 야성적인 맛이다.
그리고 보니, 영국에서 만들어진 위스키는 하필 지구 반 바퀴 건너서 또다른 섬나라에서 음미되며, 재해석되어 다시 탄생하는 것인지. 두 나라의 공통점은 어디까지 계속되는 것일까. 저물어가는 아시아의 옛 강대국과 유럽 연합을 탈출하며 휘청거리는 옛 대영 제국. 구시대의 유물이 된 전제 왕정을 세워둔 채로 극히 보수적인 내각이 나라를 좌우하는 것?

간단한 안주로 점원이 내온 말린 대추는 머나먼 북아메리카의 스피릿과 절묘하게 어우러진다. 말라비틀어진 대추 냄새는 어딘지 모르게 쭈그러진 할머니의 살 냄새를 닮았다. 내가 기억하는 할머니는 온갖 향수적인 글에 등장하는 푸근한 할머니의 상과는 거리가 멀다. 극심히 마른 그 몸 만큼이나 신경을 곤두세우던 그의 성격은 어느 옛 이야기에 나올 법한 둥그렇고 푸근한 이미지가 아닌, 어딘가 각진 현대 조형물을 닮았다. 그러던 그가 가끔 내주시던 대추며 곶감이며 하는 것들. 도회적인 삶을 꿈꾸다 그대로 집 안에 눌러앉아 이윽고 손주에게 곶감이며 연근이며 하는 것을 내주며 높은 하늘만 하염없이 내다보는 일.




- 예전에 좀 쓰다가 짱박아둔 글 하나 올려봅니다. 첫 글이라 떨리네요 ㅎㅎ



9


    목록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7794 일상/생각농담, 비하 그리고 PC 38 솔루션 18/07/05 5797 9
    7808 오프모임<가락동 벙> 펑합니다. 25 소주왕승키 18/07/07 6376 9
    7860 영화튼튼이의 모험 (Loser’s Adventure, 2018) 13 리니시아 18/07/16 6800 9
    7864 스포츠본격 일본 고교야구 영업글 8 Raute 18/07/16 6552 9
    7953 오프모임7월 28일 토요일 오프모임 공지 44 化神 18/07/26 5522 9
    8484 기타착각 6 化神 18/11/07 4600 9
    8002 영화영화 익스팅션: 종의 구원자를 보고 5 저퀴 18/08/05 6627 9
    8023 오프모임정모 얘기를 꺼낸김에 15 Toby 18/08/09 5594 9
    8049 꿀팁/강좌구글독스 OCR(문자판독)기능 사용하기 4 Toby 18/08/13 7170 9
    8056 사회넷상에서 선동이 얼마나 쉬운가 보여주는 사례 14 tannenbaum 18/08/14 5943 9
    8164 오프모임[업데이트] 광주광역시 9.8(토) 번개입니다.(3차 시도) 28 메존일각 18/09/03 6363 9
    8406 의료/건강치약에 관한 잡다한 이야기 7 化神 18/10/22 6676 9
    8519 일상/생각추억의 혼인 서약서 10 메존일각 18/11/14 4852 9
    10544 사회현대사회의 문제점(1) 23 ar15Lover 20/05/03 8915 9
    8573 일상/생각로즈 스칼라쉽 장학금 수혜자와 이타심 봉사 4 풀잎 18/11/29 6125 9
    8699 일상/생각공부 잘하는 이들의 비밀은 뭘까? (下) 4 Iwanna 18/12/28 6048 9
    8709 일상/생각부모님 횟집을 돌아보면서 -1 12 활활태워라 18/12/30 6051 9
    8719 일상/생각대추와 위스키 15 Iowa 19/01/02 6398 9
    9085 역사너희나 가능한 논쟁 8 코리몬테아스 19/04/16 5464 9
    9257 경제알기쉬운 자동차보험 1. 자동차보험은 어떻게 발전해왔는가? 3 소원의항구 19/05/30 5698 9
    9272 영화관람에 대한 관람 (기생충, 스포) 5 작고 둥근 좋은 날 19/06/03 6266 9
    9275 도서/문학연애의 기억 2 알료사 19/06/04 6198 9
    9409 일상/생각금식, 금주, 금욕 5일차 이야기. 12 Xayide 19/07/07 8023 9
    9475 과학/기술[번역] 인종 평등을 위한 과학적 기초 下 4 구밀복검 19/07/27 7982 9
    9488 역사일반인이 이해하는 이순신의 거북선 형태 2 메존일각 19/07/30 6579 9
    목록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4시간내에 달린 댓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