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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18/07/13 01:20:37
Name   은채아빠
Subject   2003, 2007, 2010, 2015, 야구, 형, 그리움
*** 2018
많은 남자들이 좋아하는 스포츠인 야구를
난 그리 즐겨 보지 않는다.
요새도 여전히, 정말 유명한 메이저 리그 진출 한국 선수 이름 정도만 안다.


*** 2003
하물며 27살 그 시절엔 지금보다 더해서
어떤 야구팀이 있는지도 잘 모르는 내게 형은 물었다.
'난 두산이야. 넌 어느 팀이니?'

우리는 늦깍이 공부를 하는 학생이었고,
전공은 다들 달랐지만 그림이 좋아서 디자인 학원에 다녔고,
몇주만에 마음이 맞아 하루 걸러 한 번은 치킨에 소주를 마셨다.

2003년이 끝나가면서 각자 지각생으로서 사회에 첫발을 디뎠고,
남자들이 다 그렇듯 형과 전처럼 자주는 못보게 되었다.


*** 2007
디자이너는 내가 감당하기엔 너무 큰 그릇이라는 것을 깨닫고 방황하던 즈음,
화목한 회사에서 일하고 있는데 본인의 부사수가 필요하다며
형은 정말 대뜸 4년여만에 전화했다. 어제 본 사람처럼.

연말이 두달 여 밖에 안 남은 2007년 가을, 우리는 한 회사에서 다시 만났고,
개발자로 전향했기에 형과 한 팀이 될 수는 없었지만,
우리는 신나고 행복하고 재미나고 성공도 했었다.


*** 2010
디자인 본부장이던 형과 개발 2팀장 쯤 되던 나는 회사에 실망하고 거의 동시에 나오게 되었다.
야근할 때면 테라스에 나가 담배 피면서 커피 마시고 잡담하던 추억은 당분간 없게 되지만,
우리는 자주 볼테니 걱정 말자고 얘기했었다.
실제로 1년에 한 두번은 만나서 즐겁게 수다를 떨곤 했지만, 나이 든 남자들이 대부분 그렇듯
회사와 일과 시간은 정말 정신없이 우리를 들었다 놨고, 어느새 연락은 거의 없게 되었다.


*** 2015
2014년 가을이던가 겨울이던가, 보고 싶어서 전화한 뒤에 들린 형의 목소리엔 쉰 소리가 가득했다.
좀 많이 아팠었어서 연락이 뜸했다며, 시간 나면 다시 보자는 말에 그러자며 끊었었다.

해가 바뀌고 2015년이 되어 병원에 있다던 형을 만나러 갔었는데,
내가 기억하던 곰처럼 커다랗고 든든한 사람은 어디가고,
너무나 쇠약한 모습의 남자가 반가움에 함박 웃음을 지으며 이런저런 말을 건넸다.

'야. 내가 말야. 너는 몰랐겠지만, 조금 유명해.'
'너 예전에 학원 다닐 때 나 그림 엄청 못 그린 거 기억나지?'
'그런데 나 요샌 그림 잘 그려, 웹툰도 계약했어. 카스포인트라고, 야구 사이트야'
'넌 야구 관심 없어서 모르겠지만, 내 닉네임도 검색하면 나와 ㅎㅎㅎ 뻔한 그레이 라고'

형은 항암치료와 척추질병 때문에 침대에 누워서 일어나지도 못하면서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두산 좋아한다던 그 표정으로
항상 그랬듯 푸근하고 따뜻한 미소로 웃으며 말했다.
누워만 있으면 심심하니까 그림 그릴 거라고 새로 산 타블렛도 자랑하면서.

덩치는 곰처럼 크고 착하긴 엄청 착하게 생긴 형을 보고 온 4달여 뒤.
같은 회사에 다녔던 동생에게서 전화가 왔다.

'형.. 진우형이....'


소식을 듣자마자 찾아간 첫째 날 장례식장은 조용하고 쓸쓸했고,
첫날이라 그리 많은 사람이 없었다. 형 사진을 보고 있어도 실감이 안 났다.
그냥 멍하니 바라만 보다가, 인사만 드리고 나왔다.

다음 날, 퇴근 후 다시 찾아간 장례식장.
2010년 즈음 회사 사람들을 만나고
도란도란 얘기를 나눈 뒤에 다들 귀가하는 길.
나도 혜화동 장례식장을 나와 운전대를 잡았는데..

그제서야 눈물이 터져 나왔다. 도저히 운전을 할 수 없어 길에 차를 세우고
기억도 나지 않는 시간동안 펑펑 울었다.
남동생 하나뿐이라 누나나 형이 없어 정말 친형처럼 믿고 따랐었는데,
이제 만날 수 없다는 사실이 실감나지 않다가,
이틀만에 받아들여져서 더 서러웠다.



** 2018
오늘. 퇴근길에 문득 형이 생각났다.
'그래, 이 맘 때 쯤이었는데... 아마 8월 초였지'

병원에서 마지막 만났던 날, 형이 자랑하던 닉네임이 생각나 검색해 보았다.
야구 커뮤니티가 나왔고, 형 소식이 있었고, 수많은 사람들이 기억해 주고 있었다.
형은 정말 많은 사람들에게서 사랑 받고 있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말해주는 형에 대한 추억을 읽고 나니,
그래도 한없이 슬프지는 않다.

'우리 형이에요!' 라고 뭔가 자랑도 좀 하고 싶고
그런 형을 지켜주지 못했다는 생각에 좀 미안하기고 하고,
무엇보다도 형이 참 보고 싶은 밤이다.

형. 보고 싶네.
치킨에 소주 맛있었는데. ㅎㅎㅎㅎ...


- 제가 철들기 시작할 때 처음 만났던 진우형이 생각나서,
  좀 슬픈 내용이지만 용기내어 적어봤습니다.
  홍차클러로서 티타임에 글 쓰는게 아마도 처음이라 그런지 긴장되고 그러네요. - 덧. 아.. 두번째군요 ^^;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즐거운 밤 되세요 다들 :)
  은채아빠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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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ㅠㅠ명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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