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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17/03/29 03:20:00
Name   와인하우스
Subject   행복론에 대한 소고.

https://www.redtea.kr/pb/view.php?id=timeline&no=30360 를 보고 문득 떠올라서 쓰는 글입니다. 댓글로 달려다가 살 좀 붙여서 티타임에 올림.


한 때 방글라데시가 행복도 지수 1위라는 자료가 돌아서 교과서에까지 등재되었고, 행복이란 어떻네 무엇이네 하는 다큐나 서적 같은 것들이 우후죽순 같이 나오던 시기가 있었죠. 물론 실제 세계 최빈국인 방글라데시의 실상은 킹갓나무위키를 참조하시고, 요새는 서구, 특히 북유럽의 복지사회가 행복한 삶을 선망하는 사람들의 모델로 추앙받고 있어요. 외부 조건이 행복을 결정한다는 생각이죠.
하지만 방글라데시의 실상이 알려진 후에도 내적인 마인드가 행복을 결정한다는 주장은 무너지지 않았어요. 다큐멘터리에서 볼 수 있는 아프리카나 아마존의 부족사회(사실 이쪽은 복지사회와도 상통하는 부분이 크지만), 법정 스님같은 현자들이나 각종 심리학 저서들이 그렇죠.
커뮤니티를 보더라도 그래요. 어떤 사람은 행복하기 위해 돈을 최대한 벌어 부자는 아니더라도 중산층의 유복함까지는 도달해야한다고 생각해요. 솔직히 일부가 아니라 대다수가 그렇게 생각하죠. 그런데 같은 곳에서도 때로는 조용하고 소박하게 살아가는 노부부나 가난한 와중에도 누군가를 돕기를 멈추지 않는 자원봉사자의 이야기가 많은 추천을 받아요. 그들이 물적으로 조금, 혹은 많이 부족하더라도 행복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거에요.


그렇다면 행복이란 과연 무엇이길래 이러한 두 가지 모습으로 모두 나타나는 것일까요? 커뮤니티에서야 한 쪽 손으론 '가난에선 행복도 없다'고 하면서 다른 손으론 소박한 행복론에 추천을 날려도 상관없지만, 이렇게 적나라하게 질문을 던진다면 어떨까요.
텔레비전과 인터넷을 즐기고 자본주의가 낳은 화려한 문화를 향유하는 현대인이 행복할까요, 아니면 그것들을 전혀 알지 못한 채 소박한 공동체적 삶만을 사는 문명 이전, 또는 개인주의가 전혀 없는 미발달된 지역의 사람들이 행복할까요?
자신의 지향점에 따라 여러 답변이 나오겠지만, 본질적으로 행복이란 측량할 수 없는 차원의 문제에요. '더 행복하다'라는 말만큼 무의미한 건 없어요. 요컨대 행복은 삶을 뜻하는 것이 아니고, 단지 간헐적 혹은 지속적으로 오는 행복한 상태만이 존재할 뿐이니까요.


조금만 독서를 하다보면 정치적으론 <스펙타클의 사회>, 자연주의적으론 <월든>이나 <무소유>같이 행복이란 이름 하에 현대의 풍요를 격하하거나 허상으로 치부하는 주장들을 많이 찾아 볼 수 있어요. (사실 전 저것들 중 제대로 읽은 게 하나도 없ㅋ음ㅋ) 물론 그들이 틀린 말을 하는 것은 아니에요. 하지만 우리는 현대의 풍요가 결코 그렇게 무의미한 것만도 아니며, 극소수를 제하면 그걸 포기할 수 있는 사람도 이유도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어요. 왜냐하면 현대 문물은 [행복함을 주진 않지만, 분명한 즐거움을 주거든요.] 그렇기에 저들의 주장이나 선언이 칭송은 받되 ‘우와...근데 난 저렇게 못살듯 ㅠㅠ'하면서 대중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거죠.
저 현인들의 주장을 인정하되 그렇다고 게임, 인터넷, 걸그룹, 치킨을 포기하지 않는 게 잘못되었다 할 수는 없어요. 현대인이 노예인 이유는 자기 스스로의 세뇌에 빠졌기 때문이지 텔레비전을 너무 보고 치킨을 우적우적대서가 아니니까요. 냉정하게 말하자면 [텔레비전이 바보를 만드는 게 아니라, 인간은 원래 바보였어요.] 바보는 텔레비전을 봐도 바보고 안봐도 바보에요. (그러고보니 요새 친구들은 바보상자라는 말 들어보기나 했을까요?) 무소유를 한다고 바보가 현인이 되지 않아요. 법정 스님이니까 그럴 수 있는 거지요. 그러니까 자신이 누구인지, 어딨는지 알기만 한다면 걸그룹 덕질하고 게임 좀 해도 되는 거에요. 반대로 그걸 거부하고 떠나간 사람들을 비웃을 이유도 전혀 없죠. 그저 사람은 자신이 택한 길을 갈 뿐이에요.


우리가 무엇을 원하고 싶은가라고 묻는다는 것은, 정작 그 말을 하는 자신도 어떤 걸 원해야할지 정확히 말할 수 없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어요. 사실 행복의 기준이 어떤 삶의 양태에 달려있다는 생각을 고수하는 한, 저 질문은 영원히 답을 내릴 수가 없을 거에요.
우리는 행복, 웰빙 등에 대한 지나친 환상을 접어야 할 필요가 있어요. 단순히 행복감만을 원한다면 정의로운 슈퍼맨이 소련을 통치하는 <슈퍼맨 레드 선>의 사회나 <매트릭스> 속 세계에서 사는 것만큼 좋은 일은 없겠죠. 하지만 지금 현대 선진사회에서 살아가는 우리 대부분은 그런 삶을 택하지 않을 거에요. 왜냐하면 우리는 행복보다 더 소중한 걸 이미 갖고 있고 체감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바로 그걸 느낄 수 있는 '개인적 자아' 말이에요.



덧붙여서)
데카르트가 한 유명한 말이 있죠. Cogito ergo sum. 생각하는 나는 존재한다.
그런데 이건 지극히 관념론적인 선언으로 보통 받아들여지지만, 르네상스 내지 근대라는 유물론적 조건이 선행했기에 데카르트 역시 있을 수 있던 거죠.
작금의 한국 사회로 말하자면 헬조선론과 21세기적 풍요라는 두 가지 상황을 결코 잊어서는 안 돼요. 청년들이 노오력을 안해서 헬조선 소리나 퍼뜨리고 다니는 것도 아니고, 제가 이런 잡소리를 할 수 있는 것도 한국 사회가 방글라데시나 IS와는 다르게 기본적으로 생존은 보장하는 사회니까요. 다만 풍요 또는 빈곤이 모든 것의 책임이자 결과이며 해결책이자 지향점이라는 사고방식에 빠지는 것을 경계해야 할 뿐이죠.
우리는 전적으로 유물론자여서도 전적으로 관념론자여서도 안돼요. 전적인 유물론자는 인간을 (자아 없는) 동물 또는 (인풋과 아웃풋이 확실한) 기계로 격하시키고, 전적인 관념론자는 뜬구름 잡는 소리만 할 뿐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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