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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6/02/02 14:14:32
Name   사슴도치
Subject   소유의 종말: 구독 경제와 경험의 휘발성

구독 경제의 확산은 대개 합리성의 언어로 설명된다. 자동차를 소유하지 않아도 되고, 소프트웨어는 필요할 때만 쓰면 되며, 가구조차 삶의 국면에 따라 들였다가 돌려보낼 수 있다. 효율은 분명히 좋아졌다. 다만 이 변화가 소비자의 태도까지 그대로 두었는지는 조금 다른 문제다.

소유는 단순히 명의의 문제가 아니다. 오래 쓰고, 관리하고, 익숙해지는 과정 속에서 사람은 물건을 ‘내 것처럼’ 느낀다. 이 감각은 법적 소유와 무관하게 형성되는, 심리적 소유감(Psychological Ownership)의 형태로 나타난다. 흥미로운 점은 이 감각이 자연발생적으로 생기지 않는다는 데 있다. 통제할 수 있다는 느낌, 대상에 대해 충분히 알고 있다는 감각, 그리고 시간과 노력을 들였다는 경험이 쌓일 때 비로소 형성된다

구독형 소비는 이 경로들을 구조적으로 약화시킨다. 언제든 해지할 수 있고, 교체가 전제된 대상에게 사람은 깊이 개입할 이유를 느끼기 어렵다. 책임과 애정은 늘 함께 움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구독은 종종 소유의 대체재라기보다는, 애초에 다른 관계 양식으로 작동한다. 소비자는 대상을 관리하거나 길들이기보다, 필요한 동안 이용하고 떠난다. 이는 접근 기반 소비(access-based consumption)가 기존의 소유 소비와 근본적으로 다른 이유이기도 하다.

이 차이는 사용 방식에서 바로 드러난다. 차를 소유할 때 사람은 세차 주기를 고민하고, 작은 흠집에 신경을 쓴다. 차량의 반응에 몸이 적응하고, 그 과정에서 기억이 쌓인다. 반면 구독 차량은 깔끔하고 편리하지만, 사용자는 그 관계를 깊게 만들 필요가 없다. 이 차이는 관리의 유무가 아니라, 관계의 밀도에서 발생한다.

관계의 밀도가 달라지면 경험의 성격도 달라진다. 경험은 누적되기보다 교체된다. 음악 스트리밍이 이를 잘 보여준다. 과거에는 한 장의 앨범을 반복해 들으며 곡의 순서와 분위기까지 통째로 기억했다. 지금은 추천 알고리즘이 이어주는 흐름 속에서 더 많은 음악을 접하지만, 특정 아티스트와의 관계는 얕아지기 쉽다. 실제로 디지털 구독 환경에서는 ‘내 음악’이라는 감각이 과거의 소유 경험과는 다른 방식으로 형성되며, 그 밀도 또한 낮아지게 되는 것이다.

이런 소비 양상은 최근 리퀴드 소비(liquid consumption)’라는 개념으로 정리되기도 한다. 일시적이고, 접근 중심이며, 물질적 흔적을 거의 남기지 않는 소비 방식이다. 이 틀에서 보면 경험의 휘발성은 개인의 성향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 귀결에 가깝다. 소비는 점점 많아지지만, 각 경험이 남기는 무게는 가벼워진다.

이러한 변화는 정체성 형성 방식에도 영향을 미친다. 소유 기반 소비에서는 물건이 자아의 외연으로 작동했다. 무엇을 쓰고, 무엇을 오래 곁에 두었는지는 그 사람을 설명하는 하나의 언어였다. 즉, 소비는 취향의 반영이었고, 이는 일종의 "확장된 자아"로서 역할을 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소유가 약화된 환경에서는 이런 외연이 얇아진다. 무엇을 소유해 왔는지가 아니라, 지금 무엇을 이용 중인지가 자신을 설명하는 단서가 된다. 정체성은 축적되는 이야기라기보다, 그때그때 업데이트되는 상태값에 가까워진다.

이 지점에서 브랜드 충성도의 문제가 다시 등장한다. 언제든 해지 가능한 구조에서, 가격이나 기능만으로 사용자를 붙잡아 두기는 어렵다. 대신 브랜드는 자신을 통해 사용자가 어떤 사람으로 보이고 싶은지를 제시해야 한다. 제품이 아니라 서사가 되고, 기능이 아니라 정체성의 언어가 된다. 이때 형성되는 애착은 소유에 기반한 것이 아니라, 관계에 기반한 심리적 소유감에 가깝다.

다만 이 방식 역시 완전한 해답은 아니다. 정체성을 브랜드와 플랫폼에 위탁할수록, 개인은 스스로 취향을 축적할 기회를 잃는다. 편리한 설명은 제공되지만, 경험의 무게는 줄어든다. 구독 경제가 약속하는 무마찰 경험은, 역설적으로 그것에 대한 깊은 애착이 자랄 시간을 앗아간다.

소유의 종말은 분명 자유를 가져왔다. 더 이상 물건에 묶이지 않아도 되는 시대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경험을 남기기보다 소비하고 흘려보내는 데 익숙해지고 있다. 이제 문제는 소유를 되돌릴 수 있느냐가 아니다. 이미 돌아갈 수 없는 지점을 지났기 때문이다.

남은 질문은 이것이다.

‘내 것이 없는 시대에도,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 경험을 축적하고, 나 자신을 설명할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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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낙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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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런 낙서 좋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
  • 생각해보지 못한 관점인데, 울림이 있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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