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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5/11/02 20:12:49
Name   meson
Link #1   https://cafe.naver.com/booheong/235193
Subject   명장(名將)의 조건에 대한 간단한 잡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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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체어 제너럴 2008년 3월호)

한국 인터넷상에 가장 널리 유포된 세계 명장 순위는 아마도 암체어 제너럴이 선정했다는 목록일 것입니다. 암체어 제너럴에서는 명장을 소개했을 뿐 순위를 매기지 않았다고도 합니다만, 여하튼 세계 명장 순위라는 것은 매우 흥미진진한 것이어서 누군가 목록을 만들어서 유포하기만 하면 이처럼 사람들의 비상한 관심을 끌곤 합니다.

그런데 장군의 능력이라는 것은 병력의 정예도, 병력의 수효, 보급 여건, 국제 정세, 지형지물, 기상 상태와 같은 [ 매우 복잡한 변수들 ]에 의하여 큰 영향을 받기 마련입니다. 따라서 매우 뛰어난 자질과 재능이 있는 인물이더라도 여러 조건이 따르지 않으면 군사적 명성을 떨치지 못하며, 반대로 군사적 명성을 떨친 인물이라고 해서 반드시 장군으로서 출중한 능력이 있다고 확정되는 것은 아닙니다.

상황이 이러하므로 어떤 장군이 [ 유능한 것 같다 ]고 지목하는 것은 가능하더라도, 특정 장군이 [ 확실히 무능하다 ]고 단언하는 것은 꽤 저어되는 일입니다. 유능한 것으로 여겨지는 장군들 사이의 우열을 정하는 것이 더욱 불가능하다는 것은 물론입니다. 가령 한니발은 스키피오와 실제 전투를 하여 패배했지만, 그럼에도 스키피오와 한니발 사이의 우열 논쟁은 끊이지 않으며 사람들은 각자 수많은 근거와 추론을 통해 자신이 선호하는 장군을 옹호하곤 합니다. 이러한 주장은 증명만큼이나 반증도 불가능하므로, 무척 재미있을 것 같기는 하지만 결론이 나기란 무망한 것입니다.

따라서 각종 위인 투표처럼 설문조사를 하여 인지도 혹은 인기를 측정하는 것이 아닌 이상, 명장 순위 매기기라는 것은 [ 순위 매기는 사람의 선호도를 알려줄 뿐 ] 어떤 객관적인 지표는 아니라고 볼 수 있습니다. 순위의 기준이 모두 정성적인 것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죠. 예컨대 이세민과 만슈타인의 비교는 인상에 좌우되기 마련이며, 만일 고노자를 완안진화상보다 높은 순위에 둔다고 하더라도 이것이 어째서 ‘잘못된’ 순위인지 합리적으로 논증하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더 깊이 들어가자면, 똑같은 인물이라고 하더라도 장군으로서의 능력이라는 것은 생애 전체에 걸쳐 변천하는 것이며 이 때문에 하나의 사례를 가지고 인물의 능력 전반을 미루어 짐작하는 것은 사실 제한적인 효과만을 가집니다. 일례로 나폴레옹의 군사적 성과는 공화국의 장군 시절과 황제 시절이 다르고 백일천하 시절은 또 다르며, 같은 나폴레옹을 가지고 비교해도 시점에 따라 평가는 바뀔 수 있습니다. 이런 비교를 심지어 서로 다른 인물을 가지고 한다면, 각자 선호하는 장군의 [ 가장 빛나는 순간 ]에 주목하여 주장을 하게 되므로, 순위는 결코 완성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계 명장의 순위라는 것은 사실상 합의가 이루어질 수 없으며, 그나마 가능한 것은 [ 특정 인물이 명장인지의 여부 ]를 판별하는 일 정도라고 여겨집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어떤 장군이 유능하다고 인정하는 것은 가능해도 특정 장군이 무능하다고 진단하는 것은 훨씬 어렵지만, 실제 무능하지는 않았더라도 성과가 다소 부족하다면 명장이라고 부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견지에서 고찰한다면 누군가를 명장으로 등재시키기 위한 비교적 정량적인 요건을 제시하는 것은 아마도 가능할 것입니다. 가령 제가 생각하기로는 다음의 6개가 이러한 요건이 될 만하다고 여겨집니다.

(1) 용병술: 전투에서 3회 승리한 장군이어야 함
- 한두 번의 전투 승리만으로는 일관된 군사적 능력을 보여주었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2) 결정력: 전쟁에서 1회 승리한 장군이어야 함
- 전투에서는 잘 싸웠더라도 승리한 전쟁이 하나도 없다면 장군으로서 성공했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3) 기여도: 승리한 전쟁에는 해당 장군이 승리한 전투가 포함되어야 함
- 동료 장군들의 활약만으로 승리한 전쟁을 통해 (2)를 충족시키는 경우는 차단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4) 무결성: 승리한 전쟁에는 해당 장군이 결정적으로 패배한 전투가 없어야 함
- 경력상의 오점이 되는 전쟁을 통해 (2)를 충족시키는 경우는 차단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5) 대진운: 위 조건들은 정규군을 상대로 달성되어야 함
- 반란 토벌 등 승리가 쉬운 싸움을 통해 명장으로 분류되는 경우는 차단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6) 지휘력: 위 조건들은 일군의 사령관으로서 달성되어야 함
- 다른 장군의 지휘하에 부장이나 돌격대장으로서 얻은 승리는 장군으로서의 승리로 보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당연하게도 위의 6개가 명장을 판별하는 완전한 기준이라고는 할 수 없고, 많은 반론과 논쟁이 제기될 수 있으며, 위 조건을 적용해 본다고 하더라도 그 충족 여부를 판정하기가 모호한 경우가 나타날 수 있을 것입니다. 예컨대 정규군의 기준이나 ‘일군의 사령관’의 기준, ‘결정적으로 패배한 전투’의 기준 등은 다시금 정성적인 판단의 영역이 되기 쉽습니다.

다만 이러한 난점에도 불구하고 굳이 위와 같은 요건을 제시해 보는 것은, 이를 충족한 장군이라면 매우 안전하게 명장이라고 부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이는 바꿔 말하면 위 조건을 충족하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꼭 명장이 아니라고는 할 수 없다는 것이며, 명장의 정의를 사람마다 다르게 할 수 있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위의 6개 조건을 만족시키는 장군을 [ ‘육각형 명장’ ] 등의 호칭을 사용해 구분해 본다면, 어떤 목록의 제작 자체는 가능할 것입니다.

꼭 이를 토대로 하여 하나의 명장 목록을 선정하여 보려는 것은 아니지만, 여하튼 ‘명장’이라는 주제는 언제나 흥미진진한 까닭에 저도 나름대로 평소에 궁구하던 바를 풀어놓자면 대략 이러한데요. 혹 위의 6개 조건을 인정할 수 있다는 분들이 계시다면, (현재로서는 작성을 하게 될지 어떨지를 거의 알 수 없는) 다음 편에서는 한번 한국사상에 존재한 ‘육각형 명장’들에 대하여 이야기를 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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