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양한 주제에 대해 자유롭게 글을 작성하는 게시판입니다.
Date 15/11/01 19:58:46
Name   Neandertal
Subject   원더우먼 탄생의 은밀한(?) 비밀...
DC 코믹스 3대장이라고 하면 흔히 슈퍼맨, 배트맨 그리고 원더우먼을 가리킨다고 합니다. 듣기로는 저 세 캐릭터를 가리켜서 "트리니티(Trinity: 삼위일체)"라고 부르면서 다른 캐릭터들과는 달리 취급을 한다고 하는데 저처럼 미국 땅에 발을 디뎌본 적도 없고 코믹스들을 읽은 적도 없는 순도 100% 문외한의 입장에서 보자면 그래도 앞 선 두 분의 3대장 지위에 대해서는 별다른 이견이 없는데 원더우먼에 이르러서는 고개를 갸웃거리게 됩니다. 과연 원더우먼이 3대장에 한 자리를 차지할 만큼의 영향력이 있는 캐릭터인지 의심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거지요.



삼대장이라 불러다오...


그도 그럴 것이 저에게 있어서 원더우먼은 생각만큼 잘 알려진 캐릭터는 아닙니다. 코믹스로서의 첫 등장은 1941년인데 (슈퍼맨은 1938년, 배트맨은 1939년에 데뷔를 했습니다.) 우리나라에 많이 알려지게 된 계기는 70년대 중반에 TV 시리즈로 제작되어 인기를 끌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그 시리즈를 직접 본 세대도 아니고 그 이후로도 슈퍼맨이나 배트맨에 비해서 원더우먼은 우리에게 노출되는 빈도는 확연히 낮은 캐릭터였습니다. 그저 10대 시절에 흔히 내뱉는 철없고 저속한 성적 농담의 대상으로나 접하곤 했던 캐릭터였습니다. 그냥 슈퍼맨의 값싼 여성 버전 정도라고만 인식하고 있었을 뿐이었지요.



그나마 생각나는 게 이 분...--;;;


하지만 최근에 한 책을 읽고 나서 이 원더우먼의 캐릭터는 그렇게 단순하게 탄생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실제 이 원더우먼이라는 캐릭터에는 그녀를 창조한 한 사람의 이상과 바람이 고스란히 들어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원더우먼 캐릭터을 만들어 낸 사람은 윌리엄 몰튼 마스턴이라는 사람입니다. 그는 하버드대학에서 영어, 역사, 철학, 심리학을 공부했고 그 대학에서 심리학으로 박사학위까지 받은 심리학자였습니다. 그는 원더우먼 캐릭터의 창시자로서도 알려졌지만 또한 요즘 이용되는 거짓말 탐지기의 원형을 처음으로 개발한 사람이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그가 사망했을 때 뉴욕타임스의 부고란에는 그가 원더우먼 캐릭터를 창시해 낸 사람이라는 언급은 없었고 거짓말 탐지기를 발명한 사람으로서 설명이 되었다고 합니다.  



원더우먼의 아버지...윌리엄 몰튼 마스턴 박사...


그와 관련해서 또 하나 재미있는 사실은 그는 아내와 애인과 함께 한 지붕 아래서 살았다는 점입니다. 그의 아내(할로웨이)는 고등학교 때 그의 첫사랑이었고 그의 애인(올리브 번)은 그가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칠 때 그의 제자였습니다. 그런데 그 세 사람은 서로 합의(!)하에 한 집에서 생활했습니다. 마스턴은 본 부인에게서도 두 자녀를 낳았고 애인에게서도 두 자녀를 낳았습니다. 그러니까 마스턴, 마스턴 부인, 마스턴 애인, 마스턴의 자녀 넷 (둘은 부인 소생, 둘은 애인 소생)이 한 집에서 살았던 것이었습니다. 아마 지금 시대에 “사랑과 전쟁”작가가 이런 대본을 썼어도 “막장”이라고 PD에게 엄청 까였을 겁니다.

이렇듯 무언가 기인 또는 괴짜적인 풍모를 보이며 범상치 않은 삶은 살았던 마스턴은 1940년에 우연치 않게 DC코믹스와 인연을 맺게 됩니다. 당시는 코믹스의 인기가 하늘을 찌를 듯 높던 시기였는데 그와 비례해서 코믹스가 아이들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 우려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의 목소리도 높아져 가던 시기였습니다. 그런 시기에 마스턴은 한 잡지에 기고한 글에서 “코믹스가 아이들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 우려하는 주장들에 대해 반박을 하고 오히려 코믹스가 아이들의 심리 발달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을 합니다. 마침 미국 코믹스의 탄생에 있어서 지대한 역할을 하고 DC 코믹스의 전신이라고 볼 수 있는 All-American Publications를 공동으로 창업한 맥스 게인스(Max Gaines)가 그의 기고문을 읽고는 그에게 DC 코믹스의 자문역과 작가역을 제안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코믹스의 자문역이라고 하는 것은 코믹스의 내용이나 캐릭터들이 아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대해서 예측하고 자문해 주는 역할을 일컫는 것이었습니다. 마스턴 박사가 DC 코믹스를 위해서 그러한 일들을 해주게 된 것이었죠. 이 일이 원더우먼 탄생의 시발점이 된 사건이었습니다. 마스턴은 자문역을 하는 김에 아예 게인스에게 새로운 코믹스 캐릭터를 제안하게 됩니다. 그는 코믹스가 피가 난무하는 남성성과 폭력성으로 인해 여러 사람들로부터 비난을 받는 시점이므로 이런 비난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여성 슈퍼히어로가 필요하다고 역설한 것이었습니다.



초창기 코믹스 원더우먼 캐릭터...


사실 마스턴 박사는 여성우월주의자였습니다. 그는 여성이 남성보다 훨씬 뛰어나며 더 나은 세상을 만들려면 여성이 세상을 이끌어 나가야 된다고 믿었던 사람이었습니다. 이는 그의 개인적인 생각이기도 했고 그의 학창시절 한창 미국 사회를 흔들어 놓았던 여성 참정권 운동이나 산아 제한과 피임을 통해서 여성에게 자신의 신체에 대한 자유와 권리를 되찾게 하자는 운동을 진행했던 마거릿 생어와 같은 사람들의 운동을 지켜보면서 형성된 믿음이기도 했습니다. (그의 애인이었던 올리브 번의 친 이모가 바로 마거릿 생어였습니다.)

그렇기에 마스턴 박사는 단지 슈퍼맨의 여성 버전의 히어로가 아니라 그 동안의 여성 참정권 운동, 여권 운동의 결과물을 대표할 수 있는 아이콘으로서 그리고 남성보다 더 뛰어난 여성의 장점을 보여주는 캐릭터로서 또한 앞으로 어린 미국의 여자 아이들이 닮기를 희망하면서 그런 여자 아이들의 롤모델로서의 원더우먼을 만들어 낸 것이었습니다. 남성만큼 강하지만 남성과는 달리 사랑과 유연함, 모성과 애정을 바탕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여성의 모습 바로 이런 모습이 원더우먼이라는 캐릭터를 가지고 투영한, 마스턴 박사가 믿었던 그리고 지향했던 여성의 모습이었던 것이었습니다. 실제로 초기 원더우먼 코믹스의 스토리에는 마스턴 박사가 여성 참정권 운동이나 여성 피임 운동이 벌어지던 시기에 있었던 사건들을 모티브로 해서 만든 것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따라서 원더우먼은 단순히 "힘 센 여성 슈퍼맨"이 아니라 슈퍼맨과는 또 다른 철학과 이념 속에서 탄생한 캐릭터였던 것이지요. 원더우먼은 여성 참정권 운동, 패미니즘 운동이 낳은 자식이었던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마스턴 박사가 사망하고 난 후 초창기의 이런 측면의 원더우먼의 모습은 점차 사라져 버리고 원더우먼은 평범하고 전형적인 여성성만 부각된 캐릭터로서 부침을 경험하게 됩니다.

요즘 코믹스의 캐릭터들이 스크린을 점령하고 있습니다. 마블이 가장 성공적인 결과물들을 보여주고 있고 영화에서는 마블에 뒤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던 DC도 나름의 반격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코믹스 캐릭터들 가운데서도 여성 캐릭터들은 아직까지 남성 히어로들의 주변부만 맴돌고 있을 뿐 아직 스포트라이트의 한 가운데로 들어오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어벤져스에서도 극을 이끌어 가는 중심에는 아이언맨, 캡틴 아메리카, 헐크 등 남성 히어로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고 유일한 여성 히어로인 블랙 위도우는 남성 히어로들이 주도하는 판에 수동적으로 참여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을 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개인적으로 내년 [배트맨 v 슈퍼맨]에서 처음으로 선보이는 원더우먼이 앞으로 [저스티스 리그] 시리즈나 본인이 단독 주인공으로 등장하게 될 [원더우먼]에서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상당히 궁금합니다.

원더우먼이 마스턴 박사가 꿈꾸었던 강하면서도 부드럽고 자주적인 여성으로서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지 아니면 [엘렉트라][캣우먼]처럼 철저하게 실패한 전형적인 캐릭터로서 남게 될지 한 번 지켜봐야겠습니다.



영화 [배트맨 v 슈퍼맨] 예고편 속의 원더우먼...그녀는 과연 마스턴 박사가 만들어 낸 원더우먼의 DNA를 가지고 있을까?...



4


    목록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1421 정치메갈리아에서 말하는 “도덕 코르셋”에 대한 질문 21 April_fool 15/11/01 12953 0
    6903 기타[서브컬처/스포있음] 블리치 떡밥 회수중인 소설 피아니시모 18/01/05 12944 0
    1161 기타가축화된 포유류는 어떤게 있나? 19 모모스 15/10/02 12917 1
    1648 기타깔깔이.jpg 7 김치찌개 15/11/27 12901 0
    10393 사회섹슈얼리티 시리즈 (3) - 쓰리썸은 과연 성적인 즐거움 때문에 하는가? 24 호라타래 20/03/18 12893 10
    9492 스포츠[사이클] TDF 상금 이야기 (1) - 자전거 선수는 얼마나 버나요 2 AGuyWithGlasses 19/07/31 12879 3
    1093 생활체육차범근의 동료들 - 레버쿠젠 5 Raute 15/09/24 12879 0
    1372 기타평생항공권이야기 32 눈부심 15/10/29 12861 1
    138 기타저는 환자입니다. 35 레지엔 15/05/31 12841 0
    1416 기타원더우먼 탄생의 은밀한(?) 비밀... 20 Neandertal 15/11/01 12836 4
    1395 의료/건강흡연으로 인한 방사능 내부 피폭에 관하여. 17 아케르나르 15/10/30 12832 0
    7017 기타6년 만난 여자친구와 헤어졌습니다. 18 soul 18/01/29 12830 25
    15 기타피지알 때문에 너무 착잡해서 눈코입이 다 사라질 뻔 7 Twisted Fate 15/05/29 12830 4
    5289 사회페다고지와 안드라고지 사이 13 호라타래 17/03/25 12799 6
    2682 문화/예술옛 그리스 항아리 27 Moira 16/04/24 12790 9
    1266 경제노벨경제학상 앵거스 디턴과 21세기자본 도마 피케티는 대립하는가? 14 난커피가더좋아 15/10/15 12774 10
    4253 의료/건강약물대사와 글루타치온-백옥주사 7 모모스 16/11/29 12770 0
    1369 도서/문학김영하 산문집 [말하다] 중에서 27 삼공파일 15/10/29 12770 6
    4975 꿀팁/강좌재미난 짤 모아봅시다 (데이터 주의) 110 Toby 17/02/23 12767 1
    728 일상/생각2ch 불륜 스레드. 16 스티브잡스 15/08/05 12752 0
    419 기타신경숙 표절건으로 다시 불거진 한국문학계 표절논란의 대형 떡밥 11 darwin4078 15/06/24 12729 0
    1200 기타히스파니올라섬 모모스 15/10/08 12725 4
    1319 요리/음식가볍게 써보는 지극히 주관적이고 간단한 치킨 리뷰. 12 관대한 개장수 15/10/22 12711 4
    386 기타[지니어스]콩픈패스 16 의리있는배신자 15/06/20 12695 0
    5600 정치[불판] 19대 대통령 선거 개표현황 236 Toby 17/05/09 12684 1
    목록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4시간내에 달린 댓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