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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3/08/27 22:54:06
Name   골든햄스
File #1   10379_10317_0143.jpg (255.2 KB), Download : 47
Subject   콘크리트 유토피아 - 각자에게는 각자의 하느님이


스포일러 有. 개인적 감상이므로 동의가 되지 않는 부분들이 있으실 수 있습니다.


거두절미하고, 영화는 재앙이 시작된 상황에서 아파트 하나만이 온전히 남은 풍경을 보여주며 시작됩니다. 아파트에 고립된 사람들이 바깥과, 또 내부에서 갈등을 겪는다는 스토리는 어찌 보면 특별할 게 없습니다만 이 영화에는 중요한 조미료가 하나 뿌려져 있습니다. 바로 한국 사회의 치열한 지금 현재, 현실을 주소로 하는 영화이며 그 점을 적극 이용하는 영화란 것입니다.

기생충이 이동진 평론가 말마따나 '우화'(寓話)라면, 이 영화는 '수필隨筆'에 가깝습니다. 구체적인 직업, 상황, 나이, 대학 전공 같은 것들이 계속 해서 언급 되고 약간 과장되었지만 차를 앞두고 수다를 떨며 뒤늦게 들어온 부외자를 모욕하며 즐기는 아주머니들이나 생존경쟁의 죄책감을 덜기 위해 바깥에 낙오된 이들을 벌레로 비하하는 남자들, 급한 순간에도 별안간 오지랖 넘게 남의 자식 계획을 묻는 기성세대 아저씨 등등의 얼굴은 '우리네 평범한 사람들'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이 영화를 즐기는 법은 매 장면이 얼마나 현실을 잘 이해하고 묘사하고 있는지를 감상하는 것이었고, 그런 측면에서 '의사세요?' '간호사예요' '간호사?' 라든지, '과가 행정학과면 공무원이 원래부터 꿈이었나봐요' 같은 장면들이 주는 리얼리즘은 마치 그간 피부에 인이 박힐 듯 새겨져 왔던 한국 사회의 지긋지긋한 면에 대해 스크린이 대신 대답을 해주는 느낌이었습니다.

"지겨웠지? 나도 그래. 아. 얼마나 위선적인지. 우리의 '보통 사람들'!"

그래서 통쾌함에 깔깔 웃다가도, 명백한 상징들과 직관적인 구조에 감탄하다가도, 문득 멈칫 하게 되는 장면이 있었습니다. 극중 선역에 가까운 명화(박보영)가 혼자서 성당의 스테인글라스의 빛을 받으며 살아남는 장면입니다. 그 장면은 명백하게, 계속 해서 선(善)을 추구한 명화만이 구원의 자격이 있다는 듯이, 혹은 적어도 구원을 희구했다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명화가 유산의 아픈 과거를 품고 아이에게 친절히 대하며 간호사라는 직업의 윤리 의식까지 더해져 외부인들의 목숨을 염려하는 건 그럴 듯한 일입니다만, 그것이 명화의 '하느님'이라면 다른 사람들도 각자 자신의 '하느님'이 있습니다.

끝에 이병헌이 연기한 역할은 제 원가족의 사진을 앞에 두고 절하듯이 죽습니다. 자신의 집에 신발을 신고 들어온 자들을 탓하면서요. 그는 끝까지 자신의 가족을 아파트에 투영하고, 아파트를 가족에 투영하는 단계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의 가족이 이미 죽었을 확률이 높단 것이 영화에 묘사된단 것을 생각해 본다면, 물신 신앙으로까지 느껴집니다. 하지만 죽은 자들을 아파트에 겹쳐 보는 전직 군인만큼이나 다른 사람들도 아파트에 간절한 신앙을 내걸고 있습니다.

제가 무신론자에서 유신앙론자로 바뀌게 된 계기가 된 책이 있습니다. 그 책에서는 대표적으로 무신론을 옹호하는 리처드 도킨스에 대해 '집단을 이루고, 목표를 갖추고, 무언가를 이루면 세상이 더 나아질 거라 믿는다'는 점에서 무신론은 그의 신앙이나 다를 바가 없다고 설파합니다. 저는 그 글귀가 그럴 듯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신이 없는 시대라고들 사람들은 이 자본주의 시대를 말하겠지만, 인간의 정신 자체가, 나약한 의식 자체가 어디 한 구석에 매일 말뚝을 필요로 하는 게 아닐까.

모든 것이 하얗고 검게 회반죽되고 기계적으로 동질화된 고도 성장을 이뤄온 한국 사회에서 사람들이 선택한 신앙은, 곳곳에 서있는 우리네 아파트.

아파트는 누군가에게는 빌라에서의 삶을 수십 년 참아가며 이룩한 계급 상승이고, 누군가에게는 자신의 신념에 따라 약자들을 돌봐주기 위해 방 한 편 내주고 작게나마 내 양심 지킬 수 있는 공간입니다. 아파트는 모두에게 모든 것입니다.

물론 구체적으로 각자에게 아파트가 의미하는 바는 다릅니다. 우선 절대적으로는 생존의 안전한 벽이자 철옹성이지만, 각자 다른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박서준이 연기한 역할은 어릴 때 부모를 잃어 화목한 가정을 이루는 것에 집착이 있다는, 현실적인 설정의 캐릭터입니다. 박서준에게는 아내가 전부입니다. 아내의 돌발 행동으로 황궁 아파트에서 나가게 되고 결국 죽음을 맞이하게 되면서까지도 그 직전까지 '내가 다 잘못했어.' 라고 아내에게 사과하며, '후회하지 않는 건 너와 결혼한 것뿐' 이라 애틋하게 말하는 그에게서는 절절한 가족을 향한 사랑이 느껴집니다. 그에게 아파트는 이르게 무리해서라도 마련한 가족의 보금자리였고, 행복의 단꿈이었습니다.

드라마 내내 얄밉게 정치적으로 잘 행동하던 부녀회장도, 아들의 시신 앞에서는 "왜"라는 단말마만 터뜨립니다. 그 순간 그녀는 삶의 모든 이유를 잊기에 그 전까지 깔끔했던 정치적 행동거지도, 이성도 모두 잃어 버립니다.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그토록 살갑게 계산적이었던 그녀도 곧바로 주민대표의 뺨을 올려 붙입니다.

이렇듯 모두가 다양한 면을 보고 있으면서도 하나(여기선 "아파트")로 단결할 수 있단 점은 정말 종교와 유사합니다.

각자에게는, 각자의 하느님이.
신의 본질은 비어있는 것이라는 모 소설(안나 이야기)의 이야기처럼 사람들은 각자의 신앙을 품고 밖의 '벌레들'과 맞서 싸웁니다. 누군가는 죄책감으로, 누군가는 위선으로, 누군가는 위악으로, 누군가는 잔인한 희열로, 합리화로 이 모든 것들을 해내면서. 이 모든 과정은 어둠 속 새까맣게 엎드려있는 박서준 역할이 보여주듯 가장들이 가정을 위한 일이라 합리화하며 사회에서 더러운 일도 마다하지 않는 것에 대한 메타포기도 합니다. 이 모든 일을 잊기 위한 술과 노래도 빠질 수 없죠. 그래서 한국인들이 음주가무를 마다하지 않나 봅니다.

"너네 가족이 사는 아파트 단지 이름이 뭐니?"

제 친구가 자신의 애인의 어머니에게 들었던 말. 참 무례한 말이라고, 그 아이와 몇 번이고 씹어 삼켰었지만, 그렇다고 한국 사회에 우리가 아파트 외에 가진 다른 정체성이, 배양하길 허락된 정체성이 있긴 하나. 가족(인정)을 사랑하는 맘이 아파트(물질)를 사랑하는 맘과 끈끈히 얽혀 분리조차 되지 않는 살과 쇠가 섞인 괴물들. 그것이 우리가 아닌가. 돈과 가족으로 이족보행하는 우리들.

그럼에도 또다시 '내가 누군가보다는 낫다' '내가 누군가보다는 행복하다' '내가 안전하다' 라고 느끼고 싶은 인간의 근원적 욕구는 계속 해서 허수아비 신을 세웁니다.

저 또한 물론 그들과 다르지 않습니다. 어찌 보면, 안심되기도 합니다. 각자에게는 각자의 하느님이. 그들의 신이 그들을 이끌어 주기를. 어느 결말이든 간에, 그들의 이야기는 그들 것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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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돈과 가족으로 이족보행하는 우리들. 우왕... 이동진이 따로없긔. 햄동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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