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양한 주제에 대해 자유롭게 글을 작성하는 게시판입니다.
Date 22/06/17 01:34:54수정됨
Name   아재
Subject   나도 괜찮은 사람이고, 너도 괜찮은 사람이야.
수학여행 전날 밤, 버스 옆에 어떤 친구가 앉을지 걱정하신 적 있나요?
친구들 모임에서 친구들과 나 사이에 묘한 벽을 느껴본 적이 있나요?

어린 시절은 낮은 자존감과 소심함을 견디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래도 사람은 혼자서 살 수는 없기에 낮은 자존감과 소심함을 넘어 친구를 만들었죠.

때로는 진심과 유머를 담아 친구를 만들고,
때로는 다른 누군가에 대한 냉소와 회피로 내 사람을 만들었습니다.
그렇게 밝음과 어두움이 자아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한참 뒤 어느 날.

아들을 유치원에서 픽업하고 멍하니 친구들과 노는 모습을 지켜봤습니다.
그 순간 과거의 내 걱정이 아이에게 겹쳐 보였어요.

친구 하나가 다른 친구 하나와의 관계를 지배하려 하고 반대로 우리 애와는 거리감을 두더군요.
익숙하고 불쾌한 답답함을 느꼈습니다.

애는 집에 오고 자기 전까지 슬프다는 말을 반복했어요.
"아빠가 한 밥은 맛이 없어 슬프다."
"오늘 한 놀이가 재미없어 슬프다."
"아빠가 그림책을 많이 안 읽어줘서 슬프다."
관계의 단절은 애 조차도 진실을 회피하고 싶을 만큼 슬픈 감정인 듯합니다.

자기 전에 아들에게 말했습니다.
"세상 모든 사람하고 친해질 순 없어. 나를 소중히 여기는 사람과 친해지면 그걸로 되는 거야."

주말 동안 아들이 슬퍼할 겨를이 없도록 놀아준 사이,
와이프는 관계를 지배하려 한 친구의 엄마에게 연락을 했습니다.
상황이 이러한 데 나와 애가 집에 놀러 가서 관계를 개선하면 안 되겠냐고...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그 친구는 상황과 사람을 통제 하며, 안정감을 찾고 싶어 하던 성격이었는데,
깔끔하게 노는 아들의 모습과 자신의 놀이 코드가 맞아 평소와 다르게 우리 애한테 밥도 먹고 가라고 했다더군요.
서로를 잘 알지 못한 상황에서 생긴 거리감이 시간을 두고 성격의 색깔을 맞춰가며 사라졌습니다.
세상 모두와 친해질 수 없다는 저의 조언이 머쓱해지더군요.

익숙한 나의 껍데기 자아가 많은 좋은 사람들과 거리를 두게 했구나 생각하니,
좀 더 속의 자아를 열고 많은 사람을 만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도 괜찮은 사람이고, 너도 괜찮은 사람이야. 그러니 서로 알아갑시다.



37
  • 너무 좋아요..
  • 우리는 생각보다 괜찮은 사람입니다


목록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10030 일상/생각나는 다시 살을 뺄 수 있을까?? 29 원스 19/11/26 6114 0
10982 일상/생각나는 대체가능한 존재인가 14 에피타 20/09/23 6137 23
15121 일상/생각나는 돈을 빌려달라는 말이 싫다. 11 활활태워라 24/12/10 3000 14
15543 기타나는 동네고양이다. 1 사슴도치 25/06/22 1386 6
3427 일상/생각나는 디씨인사이드가 싫다. 31 John Doe 16/08/02 8315 1
1507 일상/생각나는 맑은날이 싫다. 4 스티브잡스 15/11/09 6421 1
1505 일상/생각나는 무단횡단 하는 사람이 싫다. 17 化神 15/11/09 8754 0
4349 일상/생각나는 무엇을 바라고 술을 멀리했던가(가벼운 염 to the 장) 9 진준 16/12/10 4648 0
7433 육아/가정나는 비 오는 아침의 엄마 9 짹짹 18/04/23 5824 33
3242 기타나는 사드 배치 지역 당사자 지역민 중의 하나이다. 18 klaus 16/07/11 5779 0
11027 일상/생각나는 순혈 오리지날 코리안인가? 46 사이시옷 20/10/05 6668 22
8075 일상/생각나는 술이 싫다 5 nickyo 18/08/18 5734 27
8759 일상/생각나는 아직도 깍두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5 swear 19/01/13 4671 2
5819 일상/생각나는 영재였던가..? 30 켈로그김 17/06/21 5716 10
5010 역사나는 왜 역사를 좋아했는가 2 피아니시모 17/02/25 4134 3
9755 일상/생각나는 일본식 서비스가 부담스럽다. 11 원영사랑 19/10/02 5641 8
506 기타나는 자연인이다 16 지니 15/07/03 11495 0
12763 일상/생각나는 재택 근무에 반대합니다. 24 nothing 22/04/30 6154 23
8533 기타나는 죽어 가는것일까 7 이마까람 18/11/17 4510 4
2876 일상/생각나는 페미니스트가 아니다. 49 nickyo 16/05/24 7950 11
10236 창작나는 행복의 나라로 갈테야. 5 작고 둥근 좋은 날 20/01/29 7002 23
8753 도서/문학나는 호모포비아인가? 19 불타는밀밭 19/01/11 6366 2
6696 일상/생각나도 결국 이기적인 인간 1 쉬군 17/12/02 4902 12
12925 일상/생각나도 괜찮은 사람이고, 너도 괜찮은 사람이야. 4 아재 22/06/17 5911 37
7615 사회나도 노동법 알고 알바해서 인생의 좋은 경험 한번 얻어보자! 7 우주최강귀욤섹시 18/06/02 6663 21
목록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4시간내에 달린 댓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