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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5/06/18 11:23:21수정됨
Name   사슴도치
File #1   IMG_20240918_215728_877.jpg (152.6 KB), Download : 59
Subject   [사진]을 찍는다는 것


사진을 찍는다는 건 결국, 세계를 다시 조율하는 일이다. 그것은 ‘보는 것’ 이상의 감각이다. 낯익은 세계의 질서를 의심하고, 그 안의 구조를 다시 설계하려는 시도다. 내가 좋아하는 방식은 ‘낯설게 하기’다. 평범한 사물, 아무 의미도 없어 보이는 풍경, 무심하게 지나쳤던 빛과 그림자의 각도. 그 모든 것을 다시 들여다보게 만드는 시선. 낯섦은 보는 이로 하여금 멈추게 하고, 질문하게 만든다. 이건 어디지? 왜 이런 구도지? 무엇이 잘렸고, 무엇이 강조되었나?

그 중심에는 파인더라는 장치가 있다. 나는 파인더를 통해 공간을 자른다. 그것은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선택과 배제의 연속이다. 현실은 끊임없이 연속되어 있지만, 사진은 그것을 끊는다. 파인더는 마치 메스처럼 공간을 가르고, 하나의 단면을 고정한다. 그 절단면은 사실 ‘현실’이 아니라, 이미 내 시선의 조작을 거친 허구이다. 내가 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보고자 한 것만 남아 있는 구성물이다.

하지만 그 절단은 무작위적이지 않다. 파인더로 공간을 자르는 순간, 나는 무의식적으로 피사체를 재배치한다. 물리적으로 움직이지 않더라도, 내가 어느 위치에서 어느 각도로 보는가에 따라 사물의 위계는 달라진다. 거리와 배경, 빛의 밀도, 그림자의 깊이까지. 피사체는 항상 그 자리에 있었지만, 그 구도에서의 의미는 매번 새롭게 구성된다. 나는 그 배열을 통해 질문을 던지고, 리듬을 만든다. 때로는 아주 사소한 사물이 화면의 중심이 되고, 때로는 의도적으로 사람의 얼굴을 프레임 바깥으로 밀어낸다. 그것은 피사체에 대한 판단이 아니라, 세계를 해석하는 방식의 선택이다.

피사체의 재배치는 곧 세계의 재구성이다. 현실에서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던 사물이, 사진에서는 하나의 상징처럼 떠오른다. 그것은 물건이 아니고 메시지이고, 단순한 구조물이 아니라 감정의 지지대가 된다. 정지된 이미지 안에서 사물은 말 없는 은유가 되고, 감상자에게는 해석의 실마리를 제공한다. 그리고 그 순간, 사진은 ‘타자의 것’이 된다. 내가 찍었지만, 더 이상 나의 것이 아니다. 나는 단지 그 장면을 통과했을 뿐이고, 그 이미지는 스스로의 질서를 가지고 감상자와 만난다.

감상자는 그 재배치된 구조 속에서, 낯선 감정을 느낀다. 무언가 불편하거나 묘하게 끌리는 장면들. 그 감정의 진원은 설명할 수 없지만, 분명히 감각된다. 왜 이 장면이 나를 멈추게 했는지 알 수 없어도, 우리는 멈춘다. 그리고 그것이 감상자의 참여를 가능하게 한다. 그들은 프레임 속 빈 공간에 자신의 기억과 정서를 밀어넣고, 거기서 자신만의 구도를 만들어낸다. 사진은 그처럼, 찍는 자와 보는 자의 공간이 어긋나면서 맞물리는 하나의 ‘만남’이다.

그래서 나는 다시 카메라를 들고 나간다. 익숙한 공간을 잘라내고, 고정된 피사체를 흔들고, 스스로의 감각을 낯설게 만든다. 찍을 만한 것이 있는가를 묻기보단, 찍는 내가 무엇을 보고 있는지를 되묻는다. 그 모든 과정은 결국, 세상을 어떻게 구성하느냐는 선택의 문제이고, 동시에 내가 누구인가를 묻는 일이기도 하다.

어쩌면 사진은 어떤 진실을 포착하는 것이 아니라, 진실을 '편집'해 나가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나는 그 프레임 안에서 질문을 던지고, 감정을 놓고, 질서를 흔든다. 그렇게 세계는 다시 조율되고, 나는 그 조율의 틈에 머문다. 낯설게 바라보고, 잘라내고, 다시 배열함으로써. 사진은 그렇게, 늘 현실보다 반 발짝 느린 감각으로 나를 기다리고 있다.

* Cascade님에 의해서 티타임 게시판으로부터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25-06-29 2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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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네모반듯한 사진 넘모 좋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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