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서를 읽어보지 않아서 조심스럽지만, 보고서가 제안한게 정말 투표 총량제인지 아니면 QV를 기사가 잘못 설명한건지, 혹은 그도 아니면 보고서가 QV를 보고 투표 총량제로 잘못 이해한 건지 모르겠네요. 크레딧을 얘기한 거 보면 QV가 아닐까 싶기도 한데. 당장 기사에 언급된 연구소와 한국보건사회 연구원에 가도 연구자료를 못찾겠음 ㅠㅠ..

아무튼 투표총량제든 QV든 의도도 비슷하고 문제점도 비슷하다고 보는 데. '권리의 총량'만 같게 하면 되지 않느냐는 접근방식으로 선호도를 투표에 반영하자는 생각은 이해해요. 그러나, 지금보다도 더욱 더 사회 주류의 목소리를 강화하는 방식으로 작동할 것이 우려됩니다. 가령 성소수자의 권리를 제한하는 의제가 이런 환경에서 등장한다고 생각해보세요. 성소수자들은 제한된 자신의 정치 크레딧을 이 문제에 많이 투자할 수 밖에 없어요. 반면, 소수자 입장에서는 다수의 정치적 크레딧을 소모시킬 방법이 없고요. 일단 의제에 올려놓는 거 부터가 정치적 자원소모에서 비교가 되지 않음. 비단 소수자가 아니더라도, 낙태,동물권,환경론 등의 이슈도 비슷한 방식으로 상대진영의 크레딧을 소모시킬 수 있죠. 이건 이미 QV 모델 아래에서 간단한 실험도 있음.

기성세대와 미래세대간의 정치적 불평등을 해결하기 위해, 많은 의제에서 크레딧을 아낄 수 있는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 사이의 차이를 만든다면 의도가 빛바래겠죠. 이런 제도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의제 설정 과정을 신중히하고, 크레딧 사용처를 세분화함으로서 문제를 예방할 수 있다고 하는데, 연구보고서로 이슈가 된 만큼 그런 디테일한 논의가 있었으면 합니다.

그리고 잘해봐야 정책제안 수준의 보고서 내용인걸 이렇게 기사화할 꺼면, 보고서를 읽을 수 있는 하이퍼링크도 좀 주고, 관련한 시각도 소개해줬으면 좋겠네요. 정말로 정책으로 구체화된 것도 아닌데

기사 보자니 발표자료 같은데 그래서 따로 안 올라온 듯 합니다.
기사에서 묘사한 디테일(크레딧의 '총량')이 QV와는 많이 달라서 오해한 것 같지는 않고, 별도의 제도 같네요.

그리고 개인적인 생각입니다만 말씀하신 QV의 문제는 '국민투표'를 오남용하는 경우에 생길 거고, 그걸 제도적으로 막으면 괜찮다고 봅니다. 오히려 소수자들에게 좋은 무기가 될 수 있어요. 영끌한 포인트를 한번에 소수자들이 쓰기 때문에 소수자들이 쪽수는 작아도 무시할 수 없게 돼요. 포퓰리즘 정서에 영합한다고 함부로 갈라치고 차별하는 정책 시행하기 조심스러워집니다. 대통령이든 국회위원처럼 정치인 뽑는 선거는 다분야의 정책세트 형태다보니, 소수자들 표 소진하려고 다른 국민 다수에게 절실한 정책 제쳐두고 소수자들 정책만 시도하기도 어렵고.

QV는 의도부터가 '의제 별 투표'입니다. 대표자 선거에 활용하려고 만들어진 시스템이 아니고, 국민투표와 같은 투표에 활용하라고 만들어진 시스템이에요. 실제로 미국이나 독일 정당 내에서 실험적으로 QV를 적용했을 때도 전부 의제 중요도를 정하기 위해 쓰였습니다. 그리고 문제는 소수자들을 대상으로 그 '영끌한' 크레딧을 한 번에 소모시키는 게 너무 쉽다는 겁니다. 특히나 포퓰리즘과 결합하면요. 캘리포니아에서 Proposition 8(동성결혼 금지를 담음, 이하 발의안)을 둘러싸고 큰 정치적인 도전이 있었죠. 비판자들은 QV 아래에서는 지금 역사와 반대로 발의안은 통과되지 못할 꺼라고 예상합니다. 문제는, 발의안을 막기 위해 성소수자들은 자신들의 정치적 크레딧을 거의 다 소모할 수도 있다는 겁니다. 성소수자 입장에서 자원을 투입할 유인은 무한대임에 반해, 교회나 보수우파는 전략적으로 행동할 수 있습니다. 소수자에겐 권리나 생활의 문제인 게 반대쪽의 입장에서는 이념의 문제인 경우가 많아 운신의 폭이 훨씬 넓거든요. 그렇게 이번 발의안이 막히고 나면, Prop 8과 비슷하거나 혹은 다른 내용의 발의안 9,10을 준비할 수 있습니다. 결혼을 건드린다면, 그 다음은 입양, 동성부부간 의료보험 등. 갈라치는 정책이 오히려 가장 큰 이득을 볼 수 있죠. 상대의 크레딧을 소모하는 방식으로요.


반대로 소수자들은 이런 일이 있을 것을 우려하여, 다른 정치적 의제에 크레딧을 사용하기 꺼리게 되겠죠. 새로운 발의안을 경계하며, 환경이나 치안의제에 있어 있어 정치적 의사표현을 자제하게 된다 거나요. 실제로, QV 아래에서 여성들은 낙태의제에서 표를 행사하기 위해 다른 의제에서 크레딧을 사용하지 않을 수 있다고 답했는데, 이는 QV가 의도한 현상이 아니었습니다.

권리를 투쟁해야 하는 계층에게 QV는 지나치게 불리하게 작동합니다. 통과되면 좋고, 못해도 자신에게 상관없는 정치적 제안들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죠. QV를 제안하는 사람들도 이 부분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비슷한 의제의 연속적 상정을 막는다거나, 특정 의제는 QV를 불가능하게 한다거나, 의제를 분류해 크레딧도 그에 따라 분류한다거나 하는 식으로 보완책이 있어야겠죠.